Words at Graduation

3년간 함께한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9기의 졸업식에서 답사를 맡게 되었다.

입시가 끝난 뒤 한 달 정도, 가끔씩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답사란 정확히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찾아보았지만 명확한 정의는 없었다. 대신 인터넷에는 수많은 답사 글들이 있었고, 대부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1. 함께한 이들에 대한 감사
  2. 함께한 기수에 대한 이야기
  3. 그 시간을 통해 성장한 이야기

물론 좋은 내용들이었지만, 내가 막연히 떠올리던 답사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내가 알고 있던 졸업식 연설—영화나 유튜브에서 자주 보던 장면들—은 연설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가치관이나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모습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교부회장에 도전 했던 것 그리고 영재학교에서 학년장에 도전 했었다. 도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은 선거운동과 연설이 가장 컸다. 무엇보다 남들 앞에서 나의 생각을 전하는 등의 경험이 부족했기에 많이 망설였다. 결국 도전했던 것은 이번 기회가 유일하다는 생각이었다. (타임머신이 없기에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

차분히 생각해보니, 학교라는 집단에서 기수장 같은 대표 역할을 맡아 졸업식에서 답사는 할 기회가 앞으로 또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답사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그러한 답사는 차라리 TTS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형식적인 내용이어도 지금까지 전부 사람이 진행하였다. 이는 연설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누가 하는지도 중요함을 시사한다.

그래서 이번 답사는, 3년간 새롭게 얻은 생각들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 형식적인 내용들로 채우고 싶었다. 비록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오직 ‘나’가 전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남기고 싶었다.

3학년 2학기에 자기소개서를 쓰며,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이번에 쓴 답사 역시 완전히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만큼 더 오래 고민했고, 더 많은 생각을 담으려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부끄러움의 정도는 조금 낮아졌다.

아래에는 2026년 1월 2일에 진행된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제 9회 졸업식에서 실제로 낭독한 답사 전문을 함께 첨부한다.

감사합니다. 졸업생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선 9기장 이진명입니다.

학생자치회장 10기 유용민 후배의 송사를 들으니 졸업이라는 사실이 점차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먼저, 9기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저희를 따뜻하게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1학년 때에는 낯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늘 곁에서 세심하게 도와주신 1학년 부장 성수미 선생님, 2학년 때에는 저희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며, 어려움 속에서도 9기의 화합을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도해 주신 2학년 부장 곽승철 선생님, 그리고 3년동안 9기와 늘 함께하며 저희의 성장과 모든 순간을 지켜봐 주신 3학년 부장 이성현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항상 퀄리티 높은 수업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해 주신 모든 선생님들, 건강을 책임져 주신 급식 관련 선생님들, 쾌적한 학교 환경을 위해 애써 주신 위생 관리 선생님들, 원활한 행정 처리를 위해 힘써주신 행정실 선생님들, 그리고 보건 선생님, 상담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학교의 학생들을 위해 깊이 고민해 주시는 교감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김승환 교장 선생님께서는 매일 아침 학교를 돌아보시며 학생들을 세심하게 살펴주셨고, 열린 마음으로 저희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자리를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 왔는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한편으로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그 점검을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에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고 있을까요.

우리는 첫 인상 만으로 많은 판단을 합니다. 그 판단은 빠르고 효율적이며, 때로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SASA에서 지내며 저는 그 판단이 자주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선생님도, 친구도, 그리고 저 자신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강점과, 가능성이 드러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시간을 들여 보지 않았다는 점 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저는 내향적인 편이고, 목소리가 물리적으로 큰 사람도 아닙니다. 그동안 저는 이것이 제 한계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을 하며, 내향성과 외향성은 성향의 차이일 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이나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성향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 성향을 가진 채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선택은 제 성향을 바꾸지 않았지만, 제 가능성에 대한 기준은 바꾸어 놓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종종 이미 존재하는 기준에 우리 자신을 맞추려 합니다. 하지만, 기준에 맞추는 것보다, 기준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졸업이라는 하나의 단계를 마칩니다. 앞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또다시 평가받고, 비교되고, 판단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저는 여러분이 한 가지를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 기준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9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종강식 날, 교장 선생님께서 ‘아홉수’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홉수에 대해서 찾아보았는데, 아홉수는 흔히 마지막 관문이자, 큰 변화가 시작되기 직전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홉은 끝이 아니라, 열로 넘어가기 직전의 숫자입니다. 가장 불안정해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9기가 바로 그런 기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9기는 동아리와 인예주, 전야제, 체육대회 등에서 항상 새로운 시도를 추구했고, 교내 프로젝트와 연구, 그리고 자발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와 각종 대회를 통해 의미 있고 가치있는 결과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과정은 언제나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전에는 없던 변화와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낸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9기 모두가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에서 가장 열정적이였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도와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간, 빛나는 기수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졸업 이후에도 인예주와 홈커밍데이 등에서 후배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우리가 이곳에서 받았던 배려를 다시 배풀 수 있는 9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부모님들 덕분입니다. 늘 저희를 믿어 주시고, 기다려 주시며, 때로는 곁에서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과 응원이 있었기에 저희는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9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9기 여러분 3000만큼 사랑합니다!